한때는 청주, 정종류는 나의 'favorite'중 하나였다. (도대체 안좋아하는 술이 무엇? -_-) 특히나 따끈하게 데워진 정종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딸만 셋이다. 지금이야, 세상이 바뀌어 딸에 대한 선호도가 아들보다 높지만, 우리 엄마가 새댁이었을때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종의 강박관념 처럼 대부분의 '새댁'에 있던 때였다. 엄마는 딸 둘을 낳고 그만 아이를 낳으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눈치가 보였던지, 혹은 엄마도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던지, 어찌 어찌 낳은 세째가 나였다. 태몽도 남자아이의 꿈을 꾸었고, (오죽 답답하셨으면..) 점을 치러 가도 열이면 열, 세째는 아들이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어쨌든 현실은 늘 계획이나 바램과는 다른 법 - 그렇게 세째딸로 내가 태어났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한번도 아들없는 서운함을 내비치신 적이 없었다. 그리 다감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농담으로라도 아들 운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한테도 마찬가지 이셨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간혹 아빠가 마음 속으로는 아들 없는 서운함을 가지고 계시겠다고 짐작한 적이 몇번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아빠는, 딸들 앉혀놓고 술 한잔 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셨다. 자주 있었던 일도 아니다. 그저 명절때, 일년에 한두번씩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때, 명절음식을 차려놓고 따끈하게 데운 정종을 우리 딸들에게 따라주시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장 환하게 웃으시던 아빠의 얼굴 이었다.
어쨌든, 그 특별한 기억 때문일까, 나는 따뜻한 사케를 무척 좋아했고, 가끔씩 사케를 마시며 아빠의 여운을 느끼곤 했다. 물론 요즘은 와인으로 변절했지만 말이다. 아빠랑 와인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잘 풀어서 재미있게 잘 구성했다. 잘 짜여진 책이다. 사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놓은 사람이나 나처럼 사케 리스트를 놓고 너무 당혹스럽지 않기를 바란다면, 교양 서적으로라도 권하고 싶다.
사케 책에 대한 이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는데, 와인이든, 이름 어려운 사께든,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찾는 것은 꼭 꼬집어 맛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함께 마신 사람과 그 분위기를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리고 술이 특이할수록 훨씬 술도, 사람(들)도, 그 분위기도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은 너무나 자주 마셔서 '그 때 술이 참이슬 후레쉬였지..'라고 여운을 남기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만약, 참이슬에 일련 번호라도 넣던지, 혹은 참이슬과 동물, 별자리, 꽃이름을 연결해서 identity를 부여했더라면, '참이슬-민들레를 함께했던, 그 자리를 잊지 못하지..' 이런 기억이 가능하지 않으려나..
이런 저런 술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마시는 것은 기본이요, 심지어 읽으며 배우려 하는지도 모르겠고, 토요일 저녁, 주말까지 끝내야 할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니, 술을 마시는 대신,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